2020년 봄날은 여전히 찬란하지만 그 찬란함에 대한 환호성이 사라진 세상이 되어 버렸다.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은 우리 사회를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의 장으로 이끌었고, 그 전장의 한복판처럼 보이는 대구에서 살아가는 나의 일상에도 여러 변화를 가져왔다.

거리에 차가 현저히 줄었으며 평소 출근 시간에 1시간 정도가 걸리던 출근길은 휑한 도로를 편하게 질주하여 30분이면 도착하고, 평소에 오고 가는 사람들로 늘상 붐비던 동대구역이 마치 휴관한 공원 건물처럼 느껴지는 기이함을 스쳐지나가게 되며, 오직 정문만 열린 캠퍼스로 들어서면 휴일이라 폐쇄된 놀이공원 같은 썰렁함이 맞이하고 있다.

낯설 수밖에 없는 한적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마스크와 장갑으로 중무장을 한 후에 차문을 열려는 순간 마치 어디선가 나를 향해 날아올지 모르는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경계심이 나도 모르게 내 마음 한 곳에서 일어난다. 건물의 유일한 출입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안전지대를 적에게 확보하겠다는 일념을 담은 열감지 장치로 나 자신이 적에게 오염되지 않았던 것을 증명해야 하며, 그렇게 무사히 내 자리에 도착한 나는 왠지 모를 안도감으로 중무장을 해체하고, 사이버 공간으로 뛰어들어 학생들과 만난다. 인터넷이란 사이버 공간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그 공간에서도 여전히 마스크로 자신을 가린 모습으로 4차 혁명 기술에 어설프게 적응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그 사이버 공간은 물리적인 나의 일터에서 내 집으로 트랜스퍼 되었고, 나 스스로를 집안에 격리하는 시간들이 길어지고 있으며, 집안에는 택배 박스가 쌓이고, 사이버 공간에서 여기저기 시장을 돌아보는 재미에 푹 빠져 버린 아내와 언제였던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신혼여행 이후 처음으로 한 공간에서 하루종일을 보내는 날들이 늘어나고 있다. 마치 도시 전체가 강제 휴지기에 들어간 시간대에서 나의 삶은 또 그렇게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사이버 공간을 통하여 전달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조만간 승리할 것 같은 분위기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봄날의 찬란함을 누리지 못한 채 글로벌 시대의 전염병의 위력에 끝 모를 답답함으로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리고 이 난리통에서 다양한 게임들이 개인적 수준을 넘어 사회적 수준에서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 다양한 게임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게임은 “당신때문이야”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코로나로 인하여 자유를 제한 받고,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으며, 경제적 손실을 감내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분노하고 있고 그 분노의 핑계가 필요하며, 그 핑계의 대상이 필요하다. 사이버 공간은 너무나 쉽게 우리의 분노의 대상이 누군가 되어야 하는지를 여과 없이 암시하고 있고, 소위 거짓 이름을 가진 자들은 결코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코로나라는 낯선 상황에 던져진 군중들에게 “당신때문이야”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사이버 세계에서는 "세계의 호구” “참 멍청한 짓” “무더기 고발” “해외 유입도 여전” “00번 확진자” 등등의 “당신때문이야”가 소리소리 지르고 있다 ……. “당신때문이야”를 외치는 소리는 드높지만, 소리 없이 페이드 아웃(fade out) 되어진 183명(4월 5일 현재)의 이웃들에 대한 애도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 183명에게도 “당신때문이야”이란 소리가 덮어씌워진 느낌이다. 183명에 대한 애도의 소리가 제대로 울려 퍼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트라우마는 아직도 치유된 것이 아니다. 183란 수가 1이란 수일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트라우마는 지금도 깊어지고 있다. 그래서 사이버 공간에서는 더욱더 “당신때문이야”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코로나는 누군가 책임질 수 있는 일일까 ’

코로나는 자연재해이다. 인류가 지구란 행성에 태어난 그 처음 순간부터 지금까지 인류는 지구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전쟁을 계속해왔으며, 그 전쟁은 인류의 마지막까지 계속될 것이다. 바이러스는 인간과 똑같이 자연 안의 실체이며, 인류는 그 바이러스와 태초부터 함께 공존해왔다. 따라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책임질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에게 “당신때문이야”라고 하고 싶다면, 우리는 자연의 창조주에게 말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는 “당신때문이야.”

“당신때문이야”를 멈추고 코로나를 본다면 코로나는 무시무시한 적이 아니다. 내가 코로나에게 포섭되지 않는다면 나의 이웃은 절대 코로나에게 포섭되지 않는다. 나 하나를 코로나에게서 지키는 일은 그저 내가 손해 보고 나 스스로 격리하면 된다.

결국 나의 문제이다. 내가 마스크와 장갑으로 중무장하는 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이웃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나보다 덜 건강한 내 이웃을 돌보기 위한 것이다. 나의 이웃을 먼저 지키려는 나의 행동이 우리가 우리 사회를 지키고, 우리 사회가 코로나와 함께 공존하는 삶의 방식일 것이다. 공존하는 삶의 방식을 추구할 것인가 ,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 시키는 삶의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 ,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코로나가 가져다준 이 도전의 기회에 우리에게 주어진 옵션이다.

2020년 우리의 봄날은 찬란한 벚꽃잎이 나풀거리는 거리를 그저 먼발치에서 쳐다만 보고 있어야 하는 답답한 시간으로 지나가고 있다. 그래도 좋다. 그 시간대에서 나는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고, 그 변화를 선택할 수 있으며, 내가 선택한 변화는 나를 더없이 찬란한 새로운 봄날로 데려다줄 것이다. 그 새로운 봄날에 사라져간 이웃들에 대한 애도의 소리가 우리의 사이버 공간에 가득하길 바래본다 ■